[영화정보]
개봉 : 2019.01.24.
장르 : 드라마
감독 : 나딘 라바키
출연 : 자인 알라피아, 요르다노스 시프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주스(마약을 탄 물)를 길거리에 나가 팔면서 겨우 생계를 연명하는 어린 자인. 교육은 커녕 아주 기본적인 의식주 환경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가정에서 학대를 받고 자라왔다. 그의 부모는 그를 그저 가짜 처방전으로 약국에서 약이나 받아오는 셔틀 취급을 하며 돌보려 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자인의 환경 때문인지 생존능력 하나는 타고났다. 무능력한 막장 부모를 대신해 사실상 가장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임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부모 사이에 어린 동생들을 살뜰히 챙기며 주스 장사가 끝나면 아사드 가게에서 일을 하며 지낸다. 그러던 중 유일하게 말이 통해 의자하며 지냈던 아끼는 어린 여동생 사하르가 조혼으로 사악하기로 소문난 늙은 아사드의 아내로 팔려나가게 되자 분노하며 가출을 감행하게 된다. 가출 생활도 녹록치 않다. 놀이동산에서 일하려고 하지만 외소한 체구에 어린나이라 퇴짜를 맞는다. 그 곳에서 일하는 아스프로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그녀의 집에서 이제 막 돌이 되어가는 그녀의 아들 요나스를 돌봐주는 조건으로 기거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또다시 나쁜 어른들의 꼬드김에 넘어가 요나스를 넘겨주게 되고 이민을 준비한다. 이민증을 만들기 위해 잠시 들른 집에서 사하르가 너무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게 되어 임신중독증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분노한 자인은 결국 아사드를 찌르고 만다. 이 일로 소년감옥에 가지만 전화연결로 진행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부모를 고발한다 말하며 곧 태어날 자신의 동생도 본인과 똑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며 낳지 못하게 해달라고 이야기 한다. 이 방송이 화제가 되어 운 좋게 요나스는 다시 아스프로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고 재판에서도 승소한다. 자인은 드디어 주민등록증을 갖게 되는데, 증명사진을 찍으면서 사진기사의 요구에 자인은 활짝 웃으며 영화는 끝나게 된다.
어린 아이가 짊어지기엔 너무나도 무거운 삶, 가버나움
주민등록증이 없어 12살로 추정되는 이 어린아이의 공허한 눈빛은 과연 언제부터 였을까, 어디로부터 시작된 것일까 생각하게 한다. 또래들과 배우며 뛰어놀아도 벅찰 나이에 생계를 위해 부모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한다. 부모도 책임지려하지 않는 동생들을 보살피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 할 뿐이다. 영화 제목인 가버나움은 이스라엘의 갈릴리 바닷가에 있는 마을 이름이라 한다. 지역 이름의 뜻은 자비와 위로의 마을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지만, 자인의 삶은 전혀 자비롭지 않다. 하루하루가 생존의 연속이다.
영화 속 비하인드
이 영화는 레바논, 프랑스, 미국 3개국이 합작하여 만든 영화이다. 제 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도 올랐으며 칸 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 상을 수상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주연인 남자 아역 배우의 연기가 너무 리얼하고 상당히 훌륭하다고 생각했는데, 길거리에서 실제 난민, 노숙자, 불법체류자들을 캐스팅했다고 한다. 감독의 연출력과 판단이 탁월했다고 생각했던 부분이다. 심지어 촬영 도중 배우 일부가 체포되기도 하였으나 다행이도 프로듀서의 개입으로 석방되어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배우들이 연기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상황만 전달하고 그에 어울리는 대사를 알아서 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더 리얼하고 현실감 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명대사로 보는 리뷰
"엄마의 말이 칼처럼 심장을 찌르네요"
"부모님이 아이를 더 이상 낳지 못 하게 해주세요"
"인생이 개똥이에요. 내 신발 보다 더러워요"
"나도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사랑받고 싶었어요"
"웃어 자인, 사망진단서가 아니라 신분증 사진이잖아"
영화 속 자인의 모든 대사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가버나움
현재 지금 이 시간에도 레바논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 주변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무차별적인 공습으로 인해 수많은 난민이 생기고 있으며 어린아이들이 숨지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 2019년에 개봉한 영화인데도 현재의 상황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아이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생존을 위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버티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영화를 봤을 때도 고구마 먹은 것처럼 답답함과 먹먹함이 가슴을 누르곤 했다. 현재의 실제 상황도 영화보다 더하면 더했지 낫지 않다는 것이다. 두 시간 남짓 영화 속 자인의 비참한 삶을 들여다 본 것만으로도 힘에 겨웠다. 12살의 상처 입은 아이가 오죽하면 부모를 고소한다고 이야기 했을까. 그 고독하고 고단한 삶 속에서 유일한 안식처이자 가장 지키고 싶었던 여동생의 죽음이 얼마나 고통이었을까.
마지막 자인을 면회하러 온 엄마와 자인과의 대화가 잊히지 않는다. ‘신은 원래 하나를 데려가면 하나를 주신단다.’ 말하며 사하르를 잃었지만 또다시 임신한 사실을 밝힌다. 이에 자인은 ‘엄마의 말이 칼처럼 심장을 찌르네요’라고 답한다. 자인의 말처럼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를 태어나게 만들었다면 아이들이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는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낳기만 하고 그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학대와 폭력이 아니면 무엇일까 생각하게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공허하고 빛이라고는 없는 자인의 눈이 밝게 빛나면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함께 미소 짓게 된다. 이 영화를 통해 자인의 삶, 더 나아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지만, 보호받지 못하는 이 세상 모든 어린이들을 응원하게 한다.